김두겸 시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강만옥

제577회 한글날을 맞아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을 기리는 ‘외솔 한글한마당’이 7일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열렸다.

이부열 ‘외솔회’ 부회장이 ‘훈민정음’ 머리글을 낭독함으로써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외솔회는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리고, 외솔 선생의 한글사랑, 나라사랑 뜻을 이어받기 위해 1970년 외솔 선생이 돌아가신 해에 결성된 모임이다.

이어 김두겸 시장은 축사에서 “울산이 고향이신 최현배 선생의 뜻을 기리고 받들어 우리 한글을 세계에 널리 알려서 울산의 자부심을 키우자”라고 말했다.

한글날 노래를 하고 있는 합창단 어린이들. 마지막을 장식한 합창으로, 어린 아이들의 한글날 노래는 가슴 뿌듯한 희망의 천사들 같았다. 사진=강만옥
거리 행진하는 악단들. 이날 코로나로 중단됐던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문화의 거리에선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됐고, 나들이 나온 가족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함께 축제를 즐겼다.사진=강만옥
외솔 최현배 선생의 기념관. 사진=강만옥

외솔기념관과 생가가 중구 병영로12번길에 있다.

기념관 외벽에 걸린 ‘한글이 목숨’이란 글이 눈에 띄었다. ‘한글이 목숨’은 한 음식점 주인이 1932년부터 1936년까지 5년 동안 손님에게 받은 80쪽짜리 방명록에 외솔 선생이 쓴 글이다. 당시 일제강점기 아래 한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외솔 선생의 한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솔 선생은 한글 말살 정책이 있었던 일제 강점기에도 굽히지 않고 한글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다.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내부. 사진=강만옥

기념관 해설사에 따르면, 생가와 함께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생가는 이미 없어졌으나, 2008년 복원됐다. 기념관 해설사는 “많은 시민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사진=강만옥

또한 기념관에 따르면, 1926년 한글날 시작을 ‘가갸날’로 정하고 며칠 뒤, 주시경 선생과 함께 연구했던 가로쓰기를 최초로 발표했다. 이후 ‘가갸날’은 ‘한글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외솔 선생은 1940년 연희전문학교 교수 재직 때 ‘우리말본’을 저술했고, 조선어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기록에 따라 날짜를 환산, 지금의 10월 9일이 한글날이 됐다.

외솔 최현배 선생 생가 벽에 ‘단상애곡’ 일부가 적혀 있다. 사진=강만옥
글솜씨 대회에 참가해 열심히 쓰고있는 사람들. 사진=강만옥

한편, 한글 글솜씨 뽐내기 대회가 8일 중구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동헌(동원길167)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는 ▲글씨 예쁘게 쓰기, 바르게 쓰기 ▲운문 또는 산문쓰기 ▲‘훈민정음’으로 행시쓰기로 진행됐다. 한글 사랑을 글로 가장 아름답게 잘 표현한 참가자를 장원으로 뽑는다. 시상식은 심사 후 발표된다.

참가자 박모(여, 72) 씨는 “한글을 사랑하고 외솔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 해도 의의가 있다”며, “장원했으면 좋겠다”는 말했다.